자유와 정치의 도시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D.C.에 핀 무궁화


박관장의 미국 박물관 문화 기행4-필라델피아, 워싱턴 D.C.
Park’s American museum and culture travel 4
-Philadelpia+Washington D.C.

박암종 / 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관장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 있는 박물관과 문화명소를 탐방할 일정을 계획대로 마치고 6월 20일 마지막 여정으로 1박 2일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D.C를 거쳐 세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을 다녀오기로 했다. 먼저 미국 초대 수도 필라델피아를 가보기로 했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대도시이자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 필라델리아는 희랍어 필로스(philos:사랑)+아델포스(adelphos:형제)를 합쳐서 ‘형제의 사랑’란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약칭 ‘필리(Philly)’로 불린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로 1790년부터 10년간 미국의 수도였으며 헌법이 제정되었던 역사적인 도시로 아이비리그 펜실베이니아대학교(UPENN:University of Pennsylvania)가 이 곳에 있다. 필라델피아에는 미국 초창기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뛰어난 미술관들과 문화시설이 많다. 위치적으로 뉴욕과 가깝고 교통편도 직행 버스와 기차가 많다보니 비교적 편리하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정상 가족들과 함께 들리고 싶은 곳이 몇 군데 더 있어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이용해 뉴저지 레오니아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달려갔다. 중간에 한번 휴게소에 들려서 간단히 음료를 마신 후 약 2시간을 더 달려서 도착하였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훌륭한 소장품으로 익히 명성이 자자한 필라델피아 박물관(Philadelpia Museum of Art)이었다.

필라델피아 박물관 Philadelpia Museum of Art

규모도 규모지만 질적인 면에서도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박물관은 단연 필라델피아박물관이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미술관으로, 200개 이상의 전시실과 40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유명한 여러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마르셀 뒤샹이나 빈센트 반 고호, 폴 세잔 등의 작품과 그 외에 아시아 미술과 르네상스의 걸작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작품 등 명품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실제 방문해 보니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한국과 관련된 자료들을 관심가지고 찾아보았다. 2층에 있는 아시아관을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가 그동안 국내외 많은 박물관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엘리베이터는 처음 타 보았다. 거의 2미터가 넘는 높이를 가진 육중한 크기에 우아한 실내는 단연 압권이었다. 주황색 대리석으로 건축된 박물관의 외적인 특이성 못지않게 실내 곳곳이 전시품과 함께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중앙계단을 걸어 올라와도 훌륭한 박물관에 온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미로같이 꾸며진 전시장 한쪽에 있는 아시아관을 찾아 들어서니 눈에 띄는 것이 인도와 중국관 그리고 일본관이었다. 인도관과 중국관은 거대한 실내 건축의 모습을 그대도 옮겨왔으며 일본관은 기와를 얹은 일본 전통가옥을 그대로 옮겨 놓아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이었다. 한국관은 공간의 크기도 작고 전시품도 도자기로 한정돼 있었고 한쪽 작은 공간에 현대 도예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윤광조, 박내훈, 최성재의 도자기 작품과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작가 신영옥의 ‘지혜의 길(The Ways of Wisdom)’과 이미경의 ‘무제(Untitled)’, 황삼영의 ‘자갈(Pebble)’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한국관의 모습이었다.

박물관 외부의 메인 계단은 실베스타 스탤론(Sylvester Stallone:1946~)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로키 발보아(Rocky Balboa)’를 촬영한 현장으로서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인 목에 수건을 둘러매고 27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체력 단련을 했던 곳이다. 영화 촬영 당시 허가가 나지 않아 이른 새벽에 몰래 촬영을 했다고 전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군인 같은 건장한 청년이 땀 흘리며 구보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영화 성공 후 실베스타 스탤론은 자신을 모델로 한 동상을 박물관에 기증했지만,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물관 오른편 작은 공원으로 옮겨졌다. 재밌는 현상은 실내에는 관람객이 없어 한적했지만 이곳 동상 앞에는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며 몰려들어 사진들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한국 전쟁 기념관 Korean War Memorial

필라델피아에는 한국전참전용사협회(Korean War Veterans Association)가 건립한 6.25 한국전쟁 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 역점을 둔 한국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일들이 중요한 업무 중 하나여서 한 여름 내리 쬐는 햇볕의 뜨거움도 잊은 채 참전비를 찾았다. 참전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대로(Christopher Columbus Boulevard) 옆에 자리한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근처에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간직한 독립역사공원과 자유의 종, 인디펜던스 홀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석으로 된 직사각형 판형과 삼각기둥의 형태가 원형으로 모여진 형상을 하고 있는 참전기념비는 앞에 총을 짚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군인의 반신으로 된 동상이 새겨져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격려의 인사말이 새겨진 동판이 놓여 있었다. 참전기념비는 1950년부터 53년까지 3년간 벌어진 전쟁의 모든 역사적 내용을 사진과 글로서 남기고 있었다. 제인 먼저 눈에 띈 것이 1950년부터 53년까지 각 연도별 전사자들의 명단이었으며 참여한 부대의 상징마크와 함께 참전 군인수와 전사자 및 부상자의 숫자도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전쟁 전체를 4단계로 나눠 치열한 공방을 거듭한 모습이 지도와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필라델피아가 자유의 도시답게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이보다 훨씬 깊고 오래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을 때 우리나라의 독립을 지지한 최초의 미국도시가 바로 필라델피아이다. 연방정부가 한국독립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었을 때도 필라델피아는 3.1 운동을 지지하며 필라델피아에서 한인들이 독립대회를 열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참전비 옆에 마련된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니 역사적으로 자유의 정신과 그 정신을 바탕으로 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혈맹 국가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 종 센터 The Liberty Bell & Independence Hall

필라델피아에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자유의 종 센터(Liberty Bell Center)다. 이곳은 한국전 참전용사비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에 있어 차를 주차해 놓고 걸어가기로 하였다. 땡볕을 받으며 바쁘게 걸어가서 보니 외부가 유리로 건축된 길쭉한 형태의 전시관 입구 앞에 이미 많은 인파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더위를 참아내며 인내심을 가지고 약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들어가니 냉방장치가 잘 돼서 매우 시원하였다. 전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해서 그런지 보안 검색을 철저히 하였다. 안쪽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자유의 종에 가기 까지 각종 자유의 종과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와 설명문들이 판넬과 영상 등으로 잘 전시되고 있었다.

높이 1.6m, 무게 45kg의 종은 펜실베이니아의 식민지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것이나 현재는 미국 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로 보존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래 영국에서 만들어 보냈는데 얼마 되지 않아 균열이 생겨 새로 제작되었다. 독립선언 당시 타종되기도 했던 이 종은 1837년 남북전쟁 전후로는 노예 해방론자들을 대변하는 상징물이 되기도 하였으며, 전쟁이 끊이지 않던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주기도 하였다. 종 윗부분에 새겨진 ‘Proclaim LIBERTY throughout all the land unto all theinhabitants thereof’는 구약성서 레위기 25장 10절 성구로 ‘이 땅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자유를 공표하라’는 뜻이며 지금은 들을 수 없는 종소리를 대신하여 미국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미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찾아 온 관광객들로 항상 분비는 곳인데 이곳에도 우리나라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자세히 전시된 자료를 관찰하다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재건을 꿈꾸는 시기인 1954년 4월 22일 한국 어린이 합창단이 그 바쁜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서 자유의 종을 찾은 사진이었다. 민주화와 경제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존경 받고 있는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이런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이 쌓여진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 종 뒤쪽 유리를 통해 보이는 하얀 탑이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이 바로 독립선언문이 채택되었던 인디펜던스 홀이다. 이곳은 1776년 7월 4일 토머스 제퍼슨의 선언문을 기초로 한〈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nce)>이 서명, 채택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1787년에는 헌법제정회의가 열렸으며, 1790년부터 1800년까지 미국의 행정 중심부로 국가의 기초를 잡은 곳이기에 이른바 ‘미국의 탄생지(America’s Birthplace)’라 불린다.

인디스펜던스 홀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인들이었고 가이드의 설명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보였다. 예약도 하지 않았고 너무나 많은 인파로 대기 시간이 길어 인디펜던스 홀은 보지 못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의사당만 보기로 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입장 후 의사당 안에 있는 의자에 실제 의원들과 같이 앉아 당시 의회 상황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 보았다. 세계 초강대국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현 의회의 모습과 당시 소박했던 의사당의 모습을 보면서 의회민주주의를 가장 잘 발전시켜 왔고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미국의 면모를 잠시나마 느껴 볼 수 있었다.

워싱턴D.C. Washington D.C.

워싱턴의 뒤에 붙는 D.C.는 컬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로, 이곳은 미국 50개 주에 포함되지 않는 독립행정구역이다. 국가 행정부의 소재지로 미국의 수도이자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국립미술관, 링컨기념관,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백악관 등 미국을 대표하는 볼거리가 풍부해 항상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뉴욕에서 워싱턴 D.C.로 갈 때는 승용차나 비행기 그리고 기차,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빨리 가려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선호하지만 시내에서 공항을 오가는 시간과 수속 시간 등을 합하면 3~4시간은 족히 소요 되서 기차를 이용해 시내로 바로 들어가는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뉴욕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당일 여행도 가능하지만 볼만한 명소가 많고 서로간의 거리가 꽤 멀어 하루에 모든 곳을 보기란 불가능 하다. 백악관 등의 주요 명소 2~3곳과 국립미술관과 국립자연사박물관만 둘러보아도 하루가 모두 지나갈 정도이다. 따라서 보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움직이거나 투어 버스 등을 이용해 둘러보는 것이 편리하다. 그래서 나는 도착 당일 오후에 몇 군데 그리고 다음날 몇 군데 이렇게 나눠서 중요한 몇 곳을 방문하였다.

백악관 White House Washington Monument

백악관은 워싱턴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꼭 들리는 곳이다. 내부 견학은 어렵지만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자 거주지로 1800년에 완공된 후 제12대 대통령 존 애덤스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1814년 영국과의 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자 리뉴얼하면서 흰색으로 페인트를 칠한 것에 유래되어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라 부르게 되었고, 제26대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때 정식 명칭이 되었다. 내부에는 총132개의 방이 있는데, 대통령의 주거 공간은 2층과 3층이다.

투어를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1층만 둘러볼 수 있으며, 백악관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와 결혼식, 장례식 등의 이벤트가 열리는 동쪽룸(East Room)을 중심으로 도서실과 응접실 등이 개방되고 있다. 투어는 10명 이상의 그룹이 6개월 전에 신청을 해야 하고, 신청 확인 후 비지터 센터에 들러 시간과 투어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비지터 센터에서는 백악관의 역사와 건축,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을 포함한 영상물을 30분 동안 관람할 수 있다. 투어 입 장 후 화장실 및 전화를 이용할 수 없으며, 투어를 마친 후에도 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혼자이며 예약도 안한 나는 그림속의 떡같이 아쉬움을 남기며 멀리서 백악관을 볼 수 있는 곳에까지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워싱턴은 두 번째 방문이니 같은 곳에서 두 번의 사진을 찍는 셈이 되었다. 조금 있으려니 하늘에서 두두두두 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 위를 올려 보니 첼리콥터 3대가 편대를 이뤄 백악관을 향해 오고 있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였다. 대통령 전용기가 앞서고 바로 좌우 뒤로 경호헬리콥터가 따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가졌다.

백악관 만큼 상징적으로 눈에 띄는 기념물이 바로 이집트 오벨리스크 양식의 워싱턴 기념탑이다. 이 기념탑은 고도 제한 때문에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워싱턴에서 단연 눈에 띈다. 링컨 기념관과 마주보고 있으며 1884년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곳으로, 워싱턴 D.C.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자 상징이다. 총 높이는 170m이며 153m 지점에는 워싱턴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엘리베이터로 올라 갈 수 있게 돼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1분도 안돼서 바로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내부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다.

위에서 말한 대로 워싱턴에서 건물을 지을 때는 고도 제한이 없지만 이 모뉴멘트 보다 높게 지을 수 없는 게 불문율이다. 이 모뉴멘트를 중심으로 백악관과 링컨기념관이 기역자로 배치돼 있으며 링컨기념관 반대쪽에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모뉴멘트에 올라가 보이는 이런 명소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나 적어도 30분이나 한 시간은 걸어가야 만날 수 있으니 큰 나라는 큰 나라이다.

한국전 참전 추모공원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한국전 참전 추모공원은 1995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42주년에 맞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김영삼 우리나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거행한 곳이다. 19명의 미군병사가 비오는 중에도 작전을 수행중인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면 19명의 병사가 오석으로 된 벽면에 비치면 38명이 되고 이 숫자는 38선을 의미한다고 한다. 육군, 해군, 공군 거기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 등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어 의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검은 대리석 벽면에 새겨져 있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와 바닥에 새겨진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나보지도 못했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부름에 응한 아들들과 딸들을 기린다)’라는 문구에 감동이 몰려와 내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필라델피아와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모두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혈맹관계를 한마디로 웅변하고 있는 듯해 가슴이 뭉클했다.

6.25 한국전 희생자 사망은 미군 54,246명, 유엔 628,833명, 실종은 미군 8,177명, 유엔 470,267명 부상은 미군 103,284명, 유엔 1,064,453명이라고 하니 얼마나 치열하고 큰 전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함께 희생을 치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문제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서 들린 곳도 6.25 전쟁과 관련된 해병대의 고토리전투 기념비와 바로 이 참전용사 추모공원이었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곳으로 워싱턴을 방문하면 꼭 들려야 할 장소다.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국립자연사박물관은 1910년 완공된 프랑스의 보자르(Beaux-Arts)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로서 스미소니언 협회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장품이 간직되어 있다. 약 1억 1000만 점이 넘는 소장품 중 아주 일부가 18개의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볼만한 전시품이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도 1층의 해양관(Ocean Hall)과 공룡관(Dinosaurs Hall), 2층의 다이아몬드관(Hope Diamond Hall) 등이 하이라이트로 꼽히고 있다.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박물관의 지층에는 500여 점의 조류 관련 컬렉션과 기념품숍, 카페 등이 있고 1층에는 8톤에 육박하는 코끼리가 있는 로비와 2008년 새롭게 오픈한 해양관, 공룡들을 볼 수 있는 홀, IMAX 극장이 있다. 전시실 천장과 벽에 매달려 있는 동물 표본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해 한 순간에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한 장면 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2층에는 각종 광물과 보석, 화산, 화석, 곤충, 식물관과 함께 그 유명한 호프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것은 45.52캐럿의 세계 최대 블루 다이아몬드로 16개의 화이트 다이아몬드로 둘러싸여 있어 더욱 반짝반짝 빛을 낸다. 목걸이 체인에도 45개가 넘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어 눈길을 뗄 수 없을 정도인데, 아마 국립자연사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욕심나는 전시품이다.

또한 2층에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한국관도 있는데, 30평 규모에 7개의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독립관을 가진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로서 국위선양에 큰 역할을 했다. 다만 아쉽게도 올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이 한국관이 사라진다고 하니 어쩌면 이게 마지막으로 한국관을 소개하는 자리가 될 듯싶다.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1937년 시작해 1941년 완성된 국입미술관 서관(West Bulding)은 존 러셀 포프(John Russell Pope)가, 1978년 완성된 동관(East Bulding)은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설계로 유명한 중국계 건축가 아이오밍 페이(Ieoh Ming Pei:1917~)가 설계하였다. 여기에 1999년 조각공원(Sculpture Garden)이 더해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서관에는 13~19세기의 유럽 회화물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를 비롯한 세잔과 르노아르, 모네 등의 작품 들이 전시되어 있다. 워낙 걸작물이 많아 유럽이 아닌 외국에서 이런 컬렉션을 대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특히 인상파의 컬렉션이 충실한데, 그중에서도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과 고호의 <자화상> 등은 꼭 봐야할 전시품이다.

이중에서도 단연 화제가 되는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Portrait of Ginevra de’ Benci)〉이다. 이 작품을 1967년 국립미술관이 백만 달러 이상을 주고 구입했으며 지금까지도 미국 내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일한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앞면과 뒷면을 모두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패널 뒤에는 종려와 월계수로 만든 화관에 에워싸인 로뎀나무 가지들이 그려져 있고 ‘아름다움은 덕을 꾸민다(Virtutem forma decorat)’라고 적혀 있다.

동관에는 현대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별 기획전이 자주 개최되는데 마티스, 미로, 피카소 및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야요이 쿠사마의 회화와 더불어 로뎅, 브랑쿠시, 칼더, 토니 스미스 등의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양쪽 건물 모두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어 꼼꼼히 보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안내 데스크에서 서관과 동관, 조각공원의 하이라이트 작품을 꼽아놓은 리플릿을 참조하여 둘러보는 것이 좋다.

대조선주차화성돈공사관 Empire of Korea legation of Washington D.C. USA

장장 25일간의 미국 기행 중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마치고자 하는 곳은 ‘대조선주차화성돈공사관(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이다. 이번 기행에서 꼭 가보려고 준비한 의미 있는 곳으로 1899년 2월부터 16년 동안 미국 워싱턴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된 곳이다.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고, 현재까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건물은 1877년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빅토리아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1891년 11월에 대한제국이 2만 5천 달러에 매입하여 공사관으로 사용하였다. 1891년 12월에 등기를 마쳤고, 1893년에는 시카고 박람회를 준비하기도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1905년 11월에 을사늑약으로 공사관 건물 관리권이 일본에 넘어갔으며 1910년 6월에 건물은 주 미국 일본 대사 우치다 야스야(內田康哉)에게 5달러에 매각되었고, 우치다는 다시 같은 해 9월에 미국인 풀턴에게 1만 달러에 매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흑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로 이용되었다가 미국 트럭노조인 팀스터스 유니온(Teamsters Union)의 사무실로 쓰였으며, 1972년부터는 개인 집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 8월에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이 개인으로부터 350만 달러에 매입하여 이듬해부터 현재까지 문화재청 주관으로 복원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 건물은 로간 서클(Logan Circle)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워싱턴 D.C. 전체를 설계하였던 랑팡(Pierre Charles L’Enfant, 1754∼1825)이 백악관과 듀퐁 서클(Dupont Circle)을 연결한 삼각점의 한 부분이다. 주변에는 당시에 지은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보존 상태가 좋아서 1972년에 역사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1960년대에는 주로 흑인이 살았으며 그래서 워싱턴 D.C. 흑인 문화의 중심지라고 불린다.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는 여러 채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그 외관이 뛰어나, 당시 여러 나라의 공사관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자주 소개되었던 곳이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수년째 복원 공사 중에 있으며 내가 방문한 6월 20일에도 내부 인테리어는 한참 해야 할 정도로 진척이 늦은 상태였다. 기본 골조 공사는 마무리되어 박차를 가하면 10월까지 완공할 수 있다고 했으나 내 눈에는 쉬워 보이진 않았다. 거기다 지하 하수 시설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겨 완공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했으며 엎친대 덮친 격으로 바로 며칠 전, 바로 옆에 사는 100세 할머니가 ”소음과 분진으로 고통 받는다”고 소송을 걸어와 난감한 상황이라는 방송 뉴스를 접했다. 부디 잘 마무리되어 올해 내로 모든 복원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리나라 방문객들이 마음 놓고 찾아가 130년 전의 우리나라의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해 본다.

마지막 여정으로 잡은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16년간이나 미국 워싱턴 주재 대한제국 영사관으로 사용한 유서 깊은 장소에 미국 국적을 가진 조카들을 데리고 함께 현장을 보면서 과연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해 봤다. 외모는 한국인인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미국국적을 가진 한국 이민 2세대의 사고방식으로 나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물어보니 설명을 들어서 이해가 가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가슴이 뭉클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곳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조카는 최근 미 해병대에 4년 반 근무하다 제대를 하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막내조카는 8월중순이 되면 자원해서 입대를 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세계의 화약고 같은,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함께 생각해 보고 역사적 의미를 함께 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결국 공사관 방문은 이번 미국 기행에서 마지막으로 얻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심신을 식히려 세난도우 국립공원을 향해 악셀레이터 페달을 밟았다. Good Bye~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