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디자인 – ‘전시공간디자인‘을 통해 전시의 ‘내러티브’를 말하다.


김용주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

 

몇 년 전 미술관의 전시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만해도 미술전시를 이야기 중 ‘전시공간디자인’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주제였다. ‘전시공간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변에서는 곧잘 “공간전공자도 미술전시에서 역할이 있나요? 미술 전시는 대부분 하얀 공간으로 구성 되잖아요…”라고 했었다. 전시공간디자인은 조금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20세기 초 유럽을 중심으로 미술전시의 실험적 학문으로 연구되고 다양한 전시를 통해 구현되었던 매우 비중이 높은 분야였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에게 그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게 된 데에는 20세기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모더니즘적 전시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부터였다. 전시공간을 전부 하얗게 하는 일명 ‘화이트 큐브’ 방식이 전시공간디자인의 표준이 되었다. 게다가 전시의 특성상 일정기간이 지나면 오픈했다가 사라지다보니 당시 전시를 알려면 기록을 찾아야 하는데 사진과 글로밖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남겨진 기록 대부분 출품된 작품 위주의 전시 사진과 기획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쓰여진 텍스트가 전부란 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전시공간디자인’ 자료는 점차 찾아보기 어렵고 그러한 자료적 한계 덕에 연구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전시공간디자인을 제외하고 작품의 가치만 이야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작품은 언제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되고 그에 맞춰 기획하고 연출된 전시공간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전시 공간 속 작품의 관계, 전시장의 분위기, 작품과 작품 사이의 관계,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인식의 체계가 교차하면서 작품은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전시공간디자인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분야이다.

전시디자인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그 구체적인 예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있었던 <이중섭,100년의 신화> 전시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이중섭,100년의 신화>전시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 작고 60주년을 맞아 이중섭을 재조명하고자 기획된 전시였다. 의미 있는 전시를 시작하기 앞서 기획자와 전시디자이너는 반드시 풀어야 하는 몇 가지 난감한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대중들에게 이중섭 작품은 그 동안 여러 전시와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매우 익숙했고, 이제까지와 다른 차별화된 전시가 되기 위해선 어떤 요소에 차이를 주어야 많은 관람자들이 전시장으로 올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둘째는 크기가 작은 작품들을 덕수궁관의 4개 전시실에 밀도 있게 배치하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은지화, 편지화 등 이중섭의 특색있는 작품을 효과적으로 보여 줄 방법에 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전시는 1916~1956년 그가 살았던 시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하되 전시실마다 당시의 제작된 작품 특성이 나타날 수 있도록 전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전시실(1950~1953년)에는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 기간 중 생활 했던 1.4평의 작은 방을 재구성했다. 바닥에 하얀 테이핑로 표시된 1.4평 평면도는 관람객들이 작가가 당시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처했었는지 단번에 파악이 가능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했던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해서 당시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 전시된 은지화 작품은 은입사기법과 같은 섬세한 표현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작품마다 개별 진열장에 진열하는 유물 전시 방식을 택했다. 또한 16cm 크기의 작은 은지화를 16m 스케일로 확대 프로젝션 하여 마치 벽화처럼 감상 수 있게 했다. 벽화로 전시했던 이유는 이중섭이 당시 꿈꿔왔던 작가적 소원이 벽화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전시실은 이중섭이 가족에게 썼던 편지화와 그 시기(1954~1955년) 작품 활동을 통해 준비했던 미도파 전시 출품작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전시실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한쪽은 조용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사적 공간 느낌을 주어 친밀한 분위기 속에 편지화를 감상 할 수 있도록 우드 패널로 마감 했다. 다른 한쪽 영역은 미도파 전시 당시 분위기를 차용해 중성적 화이트 큐브 공간으로 연출했다. 두 공간에 서로 재료적 대비를 주어 분위기를 달리했던 것은 이중섭이 다정한 남편으로써 아빠로써의 인간적인 모습과 화가로서의 모습과 상황을 사람들이 공감각적으로 체험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 ...이번 달부터 백화점 4층 미도파 화랑에서 이중섭 작품전을 열게 되었어요. 모든것이 잘 되고 있으니 가슴 가득한 기쁨으로 나를 기다려줘요. 태현이와 태성이한테는 아빠가 너무 바빠 편지를 못 보낸다고 잘 좀 전해줘요. 이번 작품전이 끝나면 태현이와 태성이에게 충분히 자전거를 사줄 수 있으니 씩씩하게 잘 기다려 달라 해줘요... -1955년 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편지에 그려진 자전거를 탄 아이의 모습과 전시소식은 사선의 깊은 창 너머 미도파 전시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네 번째 전시실은(1955~1956년) 대구와 정릉 시기로 구성 되었다. 자신을 자책하며 삶의 열정을 잃어가는 작가의 상황은 온기 없는 차가운 그레이 톤과 열정을 상징하는 피가 굳은 검붉은 버건디 색으로 공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감상 해야만 이중섭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앞서 칼럼을 쓴 이진명 간송미술문화재단 수석큐레이터가 언급한 역사를 공부하는 두 가지 방식처럼 [ ...역사를 공부할 때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건을 공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사건이 바다라면 인물은 파도치는 거대한 물결에 부서지는 포말이다. 바다는 객관이지만 생생함이 결여되어 있고 포말은 냉정하고 전체적인 객관은 결여되었더라도 생생함을 느끼고 있는 감각적 주체다...] 전시도 마찬가지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사실적 시대 상황과 인물을 함께 이해 할 때 작품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전시 관람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행위를 넘어 공명적 경험이며 관람자의 종합적 여정을 고려한 방식으로 전개할 때 생생한 전시의 가치를 더 하게 된다.

 

필자 김용주

김용주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을 맡고 있으며, 계원예대 전시디자인과 겸임교수, 미국 Peobody Essex Museum,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전시디자인을 통해 Reddot Design Award 2016, 2013, 2012/ German Design Council Premium Prize 2015, 2014/ JAPAN Good Design Award 2014/ IF Design Award 2017, 2013 등 다수를 수상했다.